부산 동구 옛 부산진역사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공공 커피박물관'인 국제커피박물관이 오는 12월 말 운영을 종료한다. 최근 확정된 부산해사전문법원(해사법원) 임시 청사 건립 사업의 여파다. 해양수도 입지 강화라는 국가적 성과 뒤에 지역 문화자산이 희생되는 양상이 전개되면서, 브랜드 다각화를 시도하던 부산시의 정책 일관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해사법원 유치' 이면의 그늘… 시민 문화인프라 일방 철거 논란
대법원 법원청사건축심의위원회는 지난 6월 24일, 2028년 3월 개원 예정인 해사법원의 임시 청사 부지로 동구문화플랫폼(시민마당)을 선정했다. 법원 기능 수행을 위한 전면 리모델링이 결정됨에 따라, 해당 공간을 수용해 왔던 국제커피박물관은 위탁 계약 만료 시점인 올해 12월을 끝으로 강제 퇴거 수순을 밟게 됐다.

이 공간은 지난 2005년 폐역 이후 방치되던 옛 부산진역사를 리모델링하여 2022년 개관한 원도심의 핵심 문화거점이다. 특히 한 시민이 40년간 수집한 커피 유물 2,000여 점을 무상 기증하면서 조성된 공공 박물관으로, 누적 방문객만 7만 6,000여 명에 달한다. 매년 구청 예산 1억 원이 투입될 만큼 공공성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대정부 사업 유치라는 행정적 우선순위에 밀려 지속적인 운영 기반이 하루아침에 붕괴된 셈이다.

■ "축제는 꽃, 박물관은 뿌리"… 정책 모순 지적하는 시민사회
지역 시민사회는 부산시가 추진 중인 '글로벌 커피도시 부산' 정책의 자가당착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사단법인 '미래사회를준비하는시민공감'은 공식 성명을 통해 "커피 전문점이 많고 단발성 축제를 연다고 해서 도시 브랜드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수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커피 축제는 2~3일이면 끝나는 일시적 '꽃'에 불과하지만, 박물관은 연중무휴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하는 교육 공간이자 문화의 '뿌리'"라며, 상징적 거점의 보존 없는 산업 육성은 사상누각이라고 비판했다. 해사법원 유치라는 공익적 성과를 환영하면서도, 기존 시민 공공 자산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행정 편의주의적 방식에는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이다.

■ '철거' 대신 '이전·확대' 상생 해법 찾아야
대안 없는 철거가 아닌, 공간 재배치와 이전을 통한 '상생적 인프라 재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지지를 얻고 있다. 시민사회는 조속한 갈등 해결을 위해 5가지 구체적 이행 방안을 제시했다.

1. 민·관·정 협의체 구성: 부산시, 부산시의회, 동구청, 기증자, 시민사회 및 전문가가 참여하는 연대 기구 신설

2. 시(市) 공공문화자산 지정: 일선 구청 단위의 관리를 넘어 부산시 차원의 제도적 관리 기반 마련

3. 커피 산업 육성 정책과의 연계: 시의 주력 육성 정책 내에 박물관 활성화 예산 배정

4. 이전·확대 부지 확보: 원도심 외 타 지역 이전을 포함한 다각적 대체부지 검토

5. 공공 문화 보존 제도 확립: 임시 청사 조성 과정에서 기존 입주 문화시설의 일방적 배제를 방지하는 행정 조치 수립

환영 현수막 이면의 딜레마 | 부산 동구 도심에 내걸린 '해사법원 유치 확정' 환영 현수막.
환영 현수막 이면의 딜레마 | 부산 동구 도심에 내걸린 '해사법원 유치 확정' 환영 현수막.

동구청 역시 시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부산시에 협조 공문을 발송할 계획이다. 국가 사업 유치의 당위성과 지역 문화유산의 보존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부산시가 어떠한 정책적 조율 능력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청년미디어 김도형 기자 (kimdiagram@kym.io.kr)